텅 빈 왕관, 더 드레서 등 고전을 탁월하게 재해석하는 리처드 이어 감독의 작품으로 현대극으로 재탄생한 셰익스피어의 고전입니다. 늙은 왕이 세 딸의 사랑을 시험해서 벌어진 비극을 그린 영화로 오만함에 가득 차 있던 리어 왕이 유산 상속 후 모든 것을 잃고 비극적 최후를 맞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세대 간에 얼마나 큰 비극을 불러오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1. 리어 왕의 비극적 이야기
중대한 발표를 하기 위해 세 딸과 사위들을 호출한 브리튼의 왕 리어는 공주들에게 유산을 물려주기 전 자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일일이 물어봅니다. 첫째 고너릴에 이어 둘째 리건 역시 갖은 사탕발림으로 아버지에게 영토를 받아내지만 그동안 총애를 받아왔던 막내 코딜리아의 정직한 말은 아버지의 역정을 삽니다. 결국 아무것도 받지 못한 코딜리아는 프랑스의 국왕에게 쫓기듯 시집을 가게 됩니다. 리어 왕은 백 명의 수행원들을 이끌고 첫째 딸이 있는 저택으로 향합니다. 백명의 수행원을 몰고 다니던 아버지가 못마땅했던 고너릴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둘째 리건에게 아버지를 보내려 듭니다. 수행원을 줄여달라는 핑계로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린 고너릴의 의도는 적중했고 예상대로 왕은 그녀에게 저주를 퍼붓고 궁을 나와 둘째 리건을 찾아갑니다. 한편 리어 왕의 충신 글로스터 백작의 서자인 교활한 에드먼드는 아버지의 적자인 형 에드거를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밉니다. 에드먼드에게 속은 글로스터 백작은 에드거를 잡아 오라 명령하고 이를 틈타 에드먼드는 아버지와 형 사이를 이간질합니다. 소심한 형 에드거에겐 겁을 주고 아버지를 피하라며 집을 떠나가게 만듭니다. 다음 날 언니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은 리건 역시 아버지를 반기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아첨하던 두 딸에게 이제야 버림받은 걸 알게 되고 그럼에도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던 왕도 그 길로 백작의 집을 나와 정처 없이 길을 떠납니다. 딸들에게 버림받은 초라한 왕에겐 이제 평민이 된 장군과 늙은 광대만이 남아있습니다. 그런 왕의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던 글로스터 백작 또한 왕을 지키기 위해 믿고 있던 에드먼드에게 프랑스에서 온 서신을 은밀히 전해줍니다. 같은 시각 리어 왕은 난민촌에 도착하고 얼마 전 에드먼드에게 속아 집을 도망쳐 나온 에드거가 그곳에 숨어있었습니다. 때마침 왕을 찾아온 글로스터 백작은 자신의 아들을 알아보지도 못합니다. 철석같이 믿고 있던 서자 에드먼드로 인해 글로스터 백작은 목숨까지 위태로워집니다. 반역자로 몰린 글로스터 백작은 리건 부부에게 끌려와 심한 고초를 당하고 결국 두 눈을 잃게 됩니다. 얼마 후 처참히 망가진 채 버려진 아버지를 마주한 에드거는 애끓는 마음조차 내색하지 못합니다. 글로스터 백작은 세상과 작별하고자 절벽으로 향하지만 에드거는 벼랑 끝에서 목숨을 끊으려는 아버지를 지켜내고 이 모든 게 에드먼드의 소행임을 짐작합니다. 프랑스의 왕비가 된 코딜리아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수색을 명령하고 자식들에게 속아 거리의 부랑자가 된 왕과 눈먼 충신 글로스터 백작은 어느덧 비참한 모습으로 재회합니다. 얼마 후 코딜리아의 병사들이 노숙자가 된 리어 왕을 발견하고 코딜리아가 있는 기지로 그를 데리고 옵니다. 이제야 리어 왕은 진심 어린 막내딸의 마음을 알게 되는데 한편 코딜리아가 이끄는 프랑스군의 침략 소식을 전해 들은 와중에도 교활한 에드먼드는 두 자매의 마음까지 빼앗아 질투에 눈이 멀게 합니다. 덕분에 총지휘를 맡게 된 에드먼드가 프랑스군을 함락시키고 전쟁통에 글로스터 백작은 기력을 다해갑니다. 그리고 끝끝내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납니다. 결국 에드먼드는 리어 왕과 코딜리아를 생포하는 데 성공하는데 한편 에드먼드를 차지하려는 자매의 시기심은 극에 달하고 그를 차지하려는 고너릴이 급기야 동생 리건을 독살합니다. 하지만 오만한 에드먼드는 고너릴의 남편 지시로 심판대 위에 오르게 됩니다. 에드거는 비참하게 죽은 아버지의 복수에 나서고 결국 에드먼드는 허망하게 형 에드거의 손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고너릴은 모든 걸 실토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에드먼드는 리어왕과 코딜리아를 해치려던 계획을 털어놓습니다. 그러나 한발늦은 에드먼드의 고백으로 코딜리아마저 이미 죽은 후였습니다. 뒤늦은 후회로 비탄에 잠긴 리어 왕조차 가쁜 숨을 몰아쉬다 결국 죽은 딸들의 곁에서 최후를 맞습니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들에게 아첨과 충성도 이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감언이설에 취해 진실을 구부하지 못하는 인물들의 비극적 서사 킹 리어였습니다.
2. 세계적 명작을 영화화한 계기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1986년 연극 리어 왕에서 리어 왕을 연기했던 안소니 홉킨스와 1997년 연극 리어 왕을 연출했던 리처드 감독이 2015년 BBC TV 영화 더 드레서로 호흡을 맞췄습니다. 더 드레서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공연하는 극단의 극단주이자 주연 배우가 안소니 홉킨스이고 그 공연팀이 올리고 있는 작품이 리어 왕인 것입니다. 일종의 연극 속의 연극인 메타 연기인 것입니다.
3. 리어 왕 자체인 안소니 홉킨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인 오셀로의 오셀로 역과 킹 리어의 리어 왕과 노트르담의 꼽추의 콰지모도를 연기했던 배우이기 때문에 캐릭터의 스펙트럼을 논하기조차 어려운 대단한 배우입니다.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영화 킹 리어에서는 그가 실제로 80대 노인이 되어 연기를 하니 리어 왕이 더 공감이 갔던 것입니다. 킹 리어의 첫 장면에 나왔던 리어 왕은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는 폭력적인 오만의 끝이었는데 후에 나온 리어 왕은 처음에 나온 리어 왕과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나 다른 모습이어서 극단적으로 캐릭터를 변주해 내는 안소니 홉킨스 배우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4.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
세기를 초월한 이야기를 담은 작가이고 문학의 위대함뿐만 아니라 영문학의 기틀을 확립하여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원형을 마련한 작가입니다. 현대 문학은 모두 셰익스피어의 영향권 안에 들어있다고 여겨지는 이유가 셰익스피어 이전에 중세 연극을 보면 도덕극, 거리의 희극인 세속극, 성경을 재현하는 종교극 등이 있었는데 그러다가 후에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보면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의 욕망과 감정을 조명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시선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5. 인간 본성을 통찰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셰익스피어 이전의 비극들은 신이 정해주는 신화의 영향을 받은 운명적 비극이었지만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인간의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킹 리어는 사랑에 대한 욕망이 채워지지 않아 부른 비극이고 오셀로는 질투에 눈이 먼 욕망으로 인한 비극이고 맥베스는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인한 비극이고 햄릿은 비겁함에서 오는 고뇌로 인한 비극입니다. 다양한 인간의 본성이 초래하는 비극은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존재하기 어려운데 그런 근대적 인간형을 문학을 통해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는 제시한 것입니다. 또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이전의 작품들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그 당시가 신에서 인간 중심으로 옮겨와 인간 본연의 개성과 자유를 존중하는 르네상스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21세기에도 공감이 되고 유효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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